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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면 초곡의 600살 회화나무...“비스듬히 누운 고매하고 거만한 선비”

기사승인 2022.05.09  20: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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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두 번째 여행 [김천의 나무를 찾아서 6]

새파란 싹이 솟아난 남면 초곡의 600살 회화나무

온통 세상은 꽃으로 뒤덮였다. 향기로운 백색의 아카시아,쌀밥을 닮은 순백의 이팝나무,길가에는 이름 모를 노란 야생화,시골 마당 한켠에는 금낭화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절집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등꽃 , 도시에는 선거사무소 앞에  줄지어 선 화환들...

오늘은 김천을 대표하는 선비나무인 회화나무가 보고 싶어졌다.

지난 겨울 남면 초곡 600살 회화나무

#회화나무와 유교문화

회화나무는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반고유종이다. 콩과의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사찰과 서원,마을입구 우물가에 주로 식재 되었다.

회화나무 노거수는 경북에서 세 번째로 많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안동을 중심으로 한 유교문화권,경주를 중심으로 한 불교문화권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 5대 거목중에 하나로 현재 500~1000년 된 나무 10여 그루가 노거수로 지정되어 보호중이다.

중국의 수도 북경은 회화나무 가로수로 유명하다. 꽃은 풍치, 열매는 살충제와 지혈,습진을 치료하고,나무에서는 루틴이라는 물질을 추출해 고혈압 치료와 예방에 쓰이고 있다.

화화나무는 중국과 한국의 유교문화와 뗄 수 없는 관계다. 

중국은 고대부터 특정 나무를 통해 질서를 유지했다. 주나라는 사직에 밤나무를 심었고, ‘주례’라는 책에 보면 "외조의 왼쪽에 아홉그루의 가시나무를 심어서 고(孤)와 경(卿)과 대부들이 자리잡도록 했으며,사(士)는 모두 그 뒤쪽에 있게 했다. (중간생략),,.정면에는 삼괴(三槐)즉 세그루의 회화나무를 심어서 감공이 자리잡도록 했으며 주장이나 소속무리는 그 뒤를 잇게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회화나무는 주나라 때 선비의 무덤에 심은 까닭에 학자수라 부른다. 중국의 과거시험중 진사시험을 괴추(槐秋)라 부르는 것도 시기가 음력7월 회화나무에 꽃이 피는 시기와 같았기 때문이다.

서주의 수도는 호경인데 지금의 시안이다. 시안에 있는 당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누던 화청궁 온천 앞 양귀비 조각상 아래에 회화나무가 있다,

올해 봄 초곡의 600살 회화나무

송나라의 수도 카이펑에 있는 판관 포청천를 기리는 포공사 앞에도 회화나무 가로수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 포은 정몽주,야은 길재와 삼은(三隱) 중 한사람으로 유명한 목은 이색의 고향인 영덕 영해면 괴시리 마을 입구에 회화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조선의 왕들이 살았던 창덕궁에는 주나라의 관례에 따라 회화나무가 있는데 2006년 ‘창덕궁회화나무군’이 천연기념물 제472호로 지정되었다.

정몽주를 모시는 영천의 임고서원과 영천향교,도산서원에도 이황의 제자들이 서원을 짓고 난후 회화나무를 심었다.

김천과 가까운 성주 한개마을의 한주종택에도 대문 앞에 회화나무가 있다. 이 집의 주인공인 이진상은 서경덕,이황,이이,임성주,기정진과 함께 조선시대 6대 성리학자로 꼽힌다.

대구의 달성공원에도 공원의 중앙에 서침 회화나무가 있다. 대구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지난 겨울 남면 초곡 600살 회화나무

김천혁신도시를 지나 구미 가는 국도로 2분 가량 차로 달리면 우측으로 빠지는 길이 나온다.

내려서면 좌측으로 서원마을,우측에 초곡1리 세실(草室)마을이다.

세실마을은 한자로 초실(草室)이라 쓰는데 마을을 처음 만들 때 주변에 억새풀이 많아서 지은 이름이다.

어릴 때 경상도에서 억새를 새띠기라고 부르던 기억이 난다.

마을 뒷산은 봉수대가 있었다고 해서 봉화산(烽火山),봉황새가 날아올랐다 해서 비봉산(飛鳳山)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신록이 짙어가는 600살 회화나무

봉화산 뒷골 큰까금에는 집채만한 바위가 있는데 왕바위로 불린다. 

이 동네 흥양 이씨 가문에서 임금의 사위가 배출되었는데 어느날 스님이 스님을 박대해 절이 폐사되고 , 이 스님이 가문에 찾아와 조상의 산소로부터 왕비위가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해 바위를 깨뜨리니 그 속에서 금빛새가 날아가고 집안이 쇠락했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도 바위에는 구멍을 뚫은 자국과 금빛새가 날았다는 구멍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큰 금광이 있었다.

시멘트로 엉성하게 받쳐진 600살 회화나무

지난 겨울에 한 번 방문해 회화나무를 뵌 적이 있다.

마을 안 과실 선별장을 지나 우측에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담장 밖으로 삐죽하다.

집주인이 보이지 않았지만 급한 마음에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다가 보니 집에 신발이 보인다. 노크를 하니 어르신이 밖으로 나와 나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 나무는 500~600살 정도 되었는데 조상 대대로 내려온 나무라고 했다.

증조할아버지때부터 듣기로  더 크지도 않고 그 모습 그대로라고 했다.

예전에 작은 하천이 있어서 나무가 자꾸 기울어져 인부 2명을 들여 플라스틱 통에 콘크리트를 부어 직접 받쳤다고 한다.

심재가 썩어들어간 600살 회화나무

보호수로 지정하려고 했더니 땅을 기부해야 한다고 해서 그만뒀단다.

예전에 동네에서 제를 지내진 않았지만 금줄은 친 것은 본적이 있다고 했다.

눈으로 보기에 이끼가 끼어 패구나무(팽나무)인줄 알았는데 회화나무라고 했다. 주인장은 일본에 많은 아카시아와 비슷한 나무라고 말했다.

회화나무가 가시가 없는 것 외에 잎이 아카시아와 흡사해 그렇게 알고 있는 듯했다.

현재까지 본 회화나무중에서 가장 굵다.

원래 회화나무는 학자수라 해서 궁궐과 서원,사당, 양반집에 많이 심겨져 왔다.

집안에 대단한 학자가 있느냐고 물으니 증조할아버지가 사주명리학과 풍수에 해박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몸통은 반 이상이 썩고 가지도 썩어 부러진 곳이 많았다. 하지만 주인은 자신이 어릴적 모습 그대로라고 하는 걸 보니 몸통이 썩은지 100여년은 된 것 같다.

눈으로 보기엔 아주 상태가 심각해 보인다.

심재(心材)가 썩어 물이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을 했더니 아직 큰 문제는 없단다.

1년에 한 번 가을 낙엽을 쓰는데 대나무 빗자루 몇 개가 필요할만큼 수세는 왕성하다고 했다.

바로 앞집이 예전에 시의원을 하던 분인데 친구라고 했다. 높은 자리에 계실 때 마을의 소중한 나무에 관심을 기울여  치료좀 해놓았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집주인인 김갑영翁은 올해로 나이가 72세라고 했다. 좋은나무의 기운 때문인지 아주 동안이었다.

나무의 주인은 봄에 아카시아 꽃이 지고 나면 회화나무에 꽃이 핀다고 말했다.

봄에 회화꽃이 필 때면 꼭 다시 보러 오리라 약속했다.

아카시아 꽃이 피기 시작한 날 다시 찾아가니 잎사귀가 조금 자라 있었지만 무성하지는 않았다.

음력7월에 회화나무 꽃이 피니 양력으로 8월이 되어야 꽃이 필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온난화로 날이 따듯하니 수시로 와야 회화나무의 꽃을 볼 수 있으리라.

봄이 짙어가는 600살 회화나무

초곡 출신으로 우체국에 사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친우(親友)인 박칠수 君에게 전화를 걸어 이 회화나무에 얽힌 얘기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회화나무가 있는 집을 ‘회나무집’으로 불렀다고 기억했다. 특이한 나무라 친구들과 회나무집에서 모이자고 약속하기도 했단다.

도로가 포장되기 전 나무 옆에 작은 도랑이 있어 나무로 다리를 건너야 집으로 갈 수 있어서 건너마을이라 불렀다. 두 개의 도랑이 합류되어 감천과 율곡천으로 흐르고 아랫장터와 배시내까지 연결되었다.

현재 초곡의 역사를 간직한 회화나무의 생육환경은 아주 좋지 않다. 중국을 포함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김천의 나무가 신음하고 있다.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돌봐야 할 책무가 가슴 저리게 엄습한다.

지난 겨울 600살 회화나무

돌아서며 회화 어르신 나무에게 告했다.

“나무님이시여! 오래오래 사시길...”

꽃 화려하게 핀 날, 다시 꼭  찾아 뵈오리다.

 

자문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이갑희(경북 향토사연구회 회장역임,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국학진흥원자문위원)

참고문헌

김천시사(김천시)

김천의 마을과 전설

한국의 아름다운 노거수

카메라와 함께한 나무산책

경북의 노거수

노거수와 마을숲

노거수 생태와 문화

회화나무와 선비문화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저작권자 © 황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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