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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지,증산면 서무터.황점 공소...앙드레 부통 (Andre Bouton OSB) 신부의 한복 입은 아기예수 성화 인상적

기사승인 2023.09.08  17: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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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의 문화재를 찾아서 [13]

증산 서무터 공소

김천의 증산면은 조선말까지 성주군에 속했던 지역에서 가장 오지다. 수도산(1317m),단지봉(1321m),형제봉(1022m)삼방산 등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증산면 전체 넓이의 86.5%가 산이다. 김천시청에서 면 소재지인 유성리까지 약 32㎞ 떨어져 있고, 인구는 1000여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문화유적과 스토리로 가득찬 보물창고다. 

문화 유적으로는 보물 제296호인 청암사 수도암 석조보살좌상, 보물 제297호인 수도암 동·서 삼층석탑, 보물 제307호인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415호인 청암사 아미타불회도,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416호인 청암사 신중도 등이 있다.

현재 증산면사무소 자리는 청암사와 수도암의 본사였던 쌍계사(雙溪寺)가 있던 곳이다. 쌍계사가 창건된 지 1100년 후인 1951년 6.25때 북한군 패잔병이 불을 질러 소실됐다.

대웅전 내부에 있던 후불탱화 네 폭이 유명했다.지금은 주춧돌 여덟 개와 배례석이 남아 있다. 직지성보박물관에는 ‘쌍계사’라 새겨진 동종이 있고 인근 대덕중학교 증산분교에 쌍계사 당간지주와 대형 맷돌이 있다

쌍계사의 말사인 청암사는 숙종의 왕비 인현왕후가 서인으로 강등되어 3년 동안 기거하며 복위를 기원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은 인현왕후길이 조성되어 산책하기에 좋다.

수도암에는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가 새겨진 비로자나불 조성비(수도암 도선국사비)가 발견됐다. 판독결과 김생이 원화삼년(元和三年)즉 808년에 쓴 것으로 확인됐다.

조계종 11.12대 종정을 지낸 법전 스님이 1969년부터 15년간 수도암에서 절을 중수하고 선원을 열어 후학들을 양성했다.

무흘구곡은 김천시 증산면 수도계곡에서 성주군 수륜면 대가천까지 35km에 걸쳐 있다. 조선중기 유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가 중국 송나라 주희(朱熹)가 노래한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지은 무흘구곡(武屹九曲)이 있다.

6·25전쟁 전쟁때는 불꽃사단이라 부르는 공산군 3000여 명이  증산면 수도리에 주둔하면서 면 소재지에 있던 국군 제877경비대와 많은 전투를 벌였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이봉주 선수와 김이용, 권은주를 발굴해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키워낸  정봉주 감독도 증산면 옥동 사람이다.

증산 서무터 공소

오지중의 오지인 증산면 깊은 골짜기에 황점리가 있다. 이곳에 천주교 성지가 있다.

증산면 소재지에서 성주 방향(30번국도)으로 200여m쯤 가다 오른쪽(장전리. 황점리) 다리 방향으로 진입해 봉답 마을 입구에서 좌측으로 1.3km 들어가면 성모상이 반겨주는 아담한 건물이 천주교 지례성당 서무터 공소다.

서무터란 이름은 천주교 신자들이 살면서 착(善)함을 전하는 곳 선무터(善武基)라 하다가 서무터로 바뀌었다.

1869년 병인박해 때 광주 안씨(廣州安氏)인 안주원 가족이 충남 금산에서 부인과 자녀 5명을 데리고 피난와 대를 이어 살기 시작했다.

앙드레 부통 (Andre Bouton OSB,1914-1980) 신부가 그린 성화

서무터 공소에는 미술 선교로 유명한 앙드레 부통 (Andre Bouton OSB,1914-1980) 신부가 그린 성화가 있다. 1971년 8월20일자 서명도 있다.

앙드레 부통 (Andre Bouton OSB,1914-1980) 신부가 그린 성화

한복을 입은 아기예수와 토속적 외모의 예수와 제자들이 모습이 친숙하게 다가온다.

황점 공소/황악신문

황점 공소는 증산면 황점리 원황점 마을에 위치 하고 있다. 천주교 병인박해(1866) 때 난을 피해 천주교 교우들이 이곳으로 숨어들었다. 처음에는 황점리에서 약1km 떨어진 장자터라는 골짜기에서 교우촌을 형성해 숯과 옹기를 굽고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병인박해 때 경남 사천에 살던 유재선(베드로)의 조부인 유 바오로가 이곳으로 피난와 살기 시작한 것이 시초로 보인다. 병인박해가 끝난 후 경상도 지방을 순회 전교하던 김보록 신부가 이곳 황점 공소에 판공성사를 주러 왔었다.

그 당시 교세통계표(1882~1883)에는 신자가 44명,고백성사 33명,영성체 32명,8명의 예비자가 세례성사를 받았다.

황점 공소 내부

황점 공소는 증산면에서 가장먼저 전기가 들어온 마을이다. 지례성당에 소임했던 독일 윤에릭 신부가 발전기를 독일에서 들여와 설치했다.

요즘 관광 트렌드는 즐기는 문화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는 돈과 시간을 투자해 찾아간다.

각 지자체도 관광산업 육성에 적극적이다. 지역민 소득증대와 지역 이미지 개선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천시와 시의회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증산 서무터와 황점공소는 김천지역에 가장 먼저 전파된 천주교 신앙유적지다. 천주교 신자들이 성지순례 형식으로 탐방을 온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도 20여 년 전부터 신부를 파견해 관리하고 개발을 구상하면서 자료를 수집중이다.

서무터와 황점공소를 찾아오는 천주교 신자와 관광객들을 위한 편의시설과 홍보물 제작을 검토할 때다.

“아침에 눈이 내리는 바람에 모든 의식은 낮고 좁은 방안에서 치루어져야 했다. 110명 이상이 영성체를 하고 38명이 견진성사를 받았다. 의식은 매우 길었으나 모두 참을성과 신의를 지니고 질서를 지켜주었다. 산길 10리를 1시간 30분에 걸려서 선무터(善武基)에 닿았다. 역시 완전히 신자 마을로 그곳에는 아주 커다란 공소 집이 있었다.”

1921년 11월 7일 월요일(드망즈 주교 일기에 나오는 서무터 공소)

참고자료 ≪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황악신문 # 천주교 성지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저작권자 © 황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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