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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 봉명(鳳鳴)마을 300살 왕버들...“선비가 마을을 열자 봉(鳳)이 크게 울었다”

기사승인 2022.05.19  13: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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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두 번째 여행 [김천의 나무를 찾아서 7]

아포읍 봉명마을 300살 왕버들 노거수(봄)

경북 김천시 아포읍은 역사가 깊은 곳이다.

역사서에 보면 “아포가 배반을 해 대군 30인을 일으켜 밤에 감천을 건너다 물이 불어나 되돌아왔다(牙浦叛大發三十夜渡甘川水見漲而退)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기원전 1~2세기를 전후해 감천을 경계로 감문국과 대치하는 소국(읍락국가)인 아포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석리는 삼한 시대 아포국의 도읍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석리 뒷산인 관리봉(官吏峰)과 제석봉, 왕자의 태(胎)를 묻었다는 삼태봉(三胎峰) 등의 명칭이 전해지고 있다.

아포는 예(禮)를 아는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고려가 망하자 한 선비가 다섯 아들을 거느리고 아포로 낙향했다. 그는 고려말 서북면병마부사를 지낸 송월당(送月堂) 이사경(李思敬)이었다.

그는 아포읍 깊은 산골 마을에 서당을 열고 백성들을 가르치고 인재를 키우기 시작했다. 고려가 망하자 공민왕의 화상을 벽에 걸어놓고 아침저녁으로 쳐다보며 不事二君의 뜻을 접지 않았다.

아포읍 봉명마을 300살 왕버들 노거수(겨울)

이사경이 서당을 차렸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인재들이 몰려들어 300호에 달하는 집들이 들어설 정도로 마을은 커지고 아포는 학문과 예의 고장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마을 이름도 ‘인·의·예·지’로 붙였다.

지금도 이사경이 서당을 차렸다는 서당마 마을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아포읍을 관통하는 국도에서 좌회전해 아포공단을 넘어 500미터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인2리 봉명마을이 있다.

마을 왼쪽에는 아포공단이 있고 뒤로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 뒷산인 불당골에서 큰새가 나타나 울어 鳳(봉새봉) 鳴(울명)자를 써 봉명이라 했다.

봉명마을에는 300살 가량 된 15m 높이의 왕버들이 마을 입구에 서 있다.

처음으로 이 나무를 만난건 지난 겨울이었다. 겨울에 봐도 풍채가 당당하다.

수세(樹勢)도 왕성했다.

봄이 오고 잎사귀를 펼치면 그 싱그러운 기운이 마을을 덮어 넘칠 듯했다.

아포읍 봉명마을 300살 왕버들 노거수의 봄

온통 사방이 싱그러운 5월의 봄날 다시 왕버들을 찾았다.

앙상하던 나무는 새로난 가지와 잎으로 뒤덮였다. 언제 벗은 몸을 보여줬느냐는 듯 싱싱함이 풀풀 넘친다.

왕버들 노거수는 느티나무 다음으로 많은 빈도를 차지하는 노거수 수종이다.

낙동강 중 상류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경북을 벗어나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하천이나 제방의 자연식생을 대표하는 버드나무과 교목이다.

김천에도 아포와 개령을 중심으로 감천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개령면 서부리 감문국이야기 나라 입구 동부연당 옆에는 조선 전기 영남 예학의 종주로 추앙받는 김숙자(金淑子)·김종직(金宗直)부자가 심었다는 버드나무 수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1980년 초반까지도 개령 감천가에는 오래된 왕버들 고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소풍을 가곤 했다.

김천에서 선산으로 가는 국도변에도 구미에서 보호수로 지정한 왕버들 노거수 한그루가 서 있다.

아포읍 봉명마을 300살 왕버들 노거수(겨울)

구성 광명리 들판에도 200년생 웅장하고 아름다운 왕버들이 있고, 지례와 가까운 구성 구미리에도 감천변 옆 국도에서 가까이 100년이 넘은 거대한 왕버들이 껍데기가 벗겨진 채 위태롭게 서 있다.

왕버들은 말 그대로 "버들의 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왕버들이 나이가 들면 몸체가 썩는데 그 구멍안에 구렁이와 이무기,도깨비 등이 산다는 전설이 전해왔다.

그래서 왕버들을 한자로 귀류(鬼柳)라고 부른다. 귀신이 사는 버드나무란 의미다.

봉명과 가까운 아포읍 예2리 서당마 논가에도 300살 싱싱한 왕버들이 있고, 지2리 강호에도 250살 왕버들이 마을입구를 지키고 있다.

봉명마을의 왕버들은 육안으로는 풍치목으로 보인다.

돌무덤이나 제사를 지내는 판석,금줄도 보이지 않는다.

나라의 중앙집권과 행정력이  구석구석 미치지 못하던  옛날에는 동네입구에 나무를 심어 표식으로 삼아 인구를 파악하고 세금을 매기는데 용이한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노거수는 새로운 마을을 만들면서 입향조(入鄕祖) 가 심기도 하고, 서원 등 건물을 지으면서 기념하는 나무를 심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토착신앙의 기능과 마을의 화목과 결속을 도모하는 여러 가지 복합적 기능을 담당했다.

봉명마을의 유래를 보면 조선 중기 약 280년 전 경종때 인동장씨 장석세가 칠곡군 인동에서 입향한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심은 나무로 추정된다.

지금 세상은 13일 앞으로 다가온 선거로 떠들썩하다. 온통 사람들은 후보자들 이야기로 바쁘고 각자의 그릇에 따라 자신의 자리(권력)을 잡기위해 분주하다.

김천의 자연부락은 600여개이고 작은 마을까지 합치면 1000여개에 이른다.

그 많은 동네마다 전설이 숨쉬고 크든 작든 마을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지명과 나무가 있다.

오래된 나무를 찾아다니다 보면 오래된 老巨樹에는 분명히 신령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 특히 수 백년 동안 그 마을을 지켜온 당산나무는 더욱 그렇다.

보름남짓 남은 미래의 권력을 원하는 이들은 시골의 마을앞에 서 있는 나무를 무심코 지나치거나 무시하지 말고

겸손히 예를 지키고 틈을 내어 한 번 어루만지며 당선을 기원하면 그 신령한 나무들은 반드시 福을 내려줄 것이다.

아포읍 봉명마을 300살 왕버들 노거수의 봄

고려시대 이규보와 동시대를 살았던 진화(陳澕)는 버들을 이렇게 노래했다.

柳(류)

鳳城西畔萬條金(봉성서반만조금)

봉성 서쪽 강둑에 노랗던 수만 가지


勾引春愁作暝陰 (구인춘수작명음)

봄 시름 끌어안고 그늘을 만들었네

 

無限狂風吹不斷(무한광풍취부단)

한없이 미친 바람 쉬지 않고 불어

 

惹煙和雨到秋深 (야연화우도추심)

안개 끼고 비 어울려 깊은 가을을 맞게 됐네

 

봉명의 300살 버들 어르신!!

푸른 잎사귀 노랗게 가을을 맞이하면 막걸리 한 잔 들고 다시 찾아 뵈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건강하소서.

아포읍 봉명마을 300살 왕버들 노거수의 봄

자문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이갑희(경북 향토사연구회 회장역임,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국학진흥원자문위원)

 

참고문헌

김천시사(김천시)

김천의 마을과 전설

한국의 아름다운 노거수

카메라와 함께한 나무산책

경북의 노거수

노거수와 마을숲

노거수 생태와 문화

회화나무와 선비문화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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