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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의 노거수 9] 남면 오봉리 400년 느티 (갈항.갈손 마을)

기사승인 2021.11.07  18: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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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면 갈항마을 노거수(2021.11.6)/황악신문

오봉지의 반짝이는 물빛과 흩날리는 낙엽을 뒤로하고 갈항(葛項)마을로 들어선다.

갈항은 금오산 서쪽에 자리 잡은 마을로 갈항사(葛項寺)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주변에 칡이 많아서 생긴 이름으로 추정된다.

갈항마을 노거수

금오산 뒤쪽의 깍아지른 절벽과 수려한 산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무 뒷편으로 마을이 있고, 마을 후면은 우람한 금오산과 노적봉이 보인다. 아마도 부자가 많이 나왔을 것이다.

논에는 벼 수확이 한창이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 김천과 구미를 경계 짓는 위대한 금오산 서쪽 노적봉 밑 칡넝쿨 우거진 산기슭에 한 승려가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승전’,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7세기 말 당나라에 유학해 화엄학의 3대조인 법장에게 배우고 의상에게 전하는 편지를 가지고 온 유학파 고급 두뇌의 소유자다.

갈항마을 노거수

신라로 귀국한 후 의상대사에 문하에 들어갔지만 그는 푸대접을 받았다. 요즘말로 비주류였던 것이다. 

의상의 10대 제자에도 끼지 못하고 참담한 현실 속에서 자신을 한탄하던 승전은 수도 서라벌을 떠나 지방의 촌구석 개령군(현재의 김천시)에 절을 짓고 돌을 깍아 사람의 형상을 만든 해골을 앞에 두고 설법을 시작했다.

갈항마을 노거수

고려 후기까지 돌 해골 80개가 갈항사 주지에게 전해져 왔다. 돌 해골을 제자로 삼아 화엄경을 강의한 갈항사, 당나라에 유학해 화엄의 요지를 배워왔으나 주류에서 소외되었던 한 남자가 왕도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금오산 서쪽 기슭에 칡넝쿨로 얼기설기 지어 만든 절이 갈항사의 시작이었다.

갈항마을 노거수

그 갈항사로 들어가기 전 마을 입구에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마치 봉황의 알을 안고 있는 듯하다. 갈항사를 가면서 몇 번이나 지나쳤을터인데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듯하다. 지금까지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가을이 오니 비로소 느티의 아름다움을 알겠다.

갈항마을 노거수

한참을 경이로움으로 바라보고 어루만진 후 내려오다 김천 최대의 인공 담수호인 오봉지 중간에 놓인 다리를 건너 갈손(葛孫)마을로 향했다. 두마을 모두 칡과 관련된 지명이다.

오봉지
오봉지

 갈손은 운남산 아래에 자리 잡은 마을로 마을에 칡넝쿨이 많아 붙인 이름이다. 밀양 박씨 박기성(朴基成)이 영조 때 아포에서 이주해 정착한 이래 밀양 박씨가 집성촌을 이루었다.

김천에 살면서도 넓디 넓은 오봉지를 차로 가로지르기는 처음이다 마치 바다를 건너 섬으로 가는 기분이다.

갈손마을 노거수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니 느티나무 한 그루가 객을 맞는다. 갈항마을의 느티보다는 작지만 비스듬히 누운 모습이 자뭇 거만하다.

갈손마을 노거수

뿌리가 튼실하게 뻗어나와 신비롭다.

갈손마을 노거수

대각선  뒤쪽에 한그루가 더 있다.

갈손마을 노거수

동네 노인에게 들으니 물 건너 깊은 산골에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단다. 가구수가 60여가구라고 하니 작은 마을이 아니다. 살기는 참 좋은 곳이다.

뒤로는 산이 둘러싸고 앞은 물이니 背山臨水가 아니던가?

김천의 자연부락은 다녀보면 볼수록 복 받은 동네와 아름다운 곳이 많다.

#황악신문 #김천의 노거수

 

김서업 대표기자 hwangaknews@naver.com

<저작권자 © 황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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