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甘川을 품에 안은 고대국가...2000년의 꿈속에서 깨어나다

기사승인 2021.02.21  20: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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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첫 번째 여행 ” [감문국 이야기1]

경부고속도로 동김천IC에서 내려 감천을 가로지르는 대교를 건너 선산방향으로 5분정도 차를 달리면 개령면 동부리가 있다. 지금 여기에 삼한시대 소국(小國)의 이름을 딴  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기원전 1~2세기경 생겨나 수백년 동안 김천지역에 번성하다 1800년 전 사로(신라)에 멸망한 변한계 읍락국가인 감문국의 수도에 만들어지고 있는‘감문국 이야기나라’다.

이곳에서 지금 김천의 뿌리이자 잊혀진 감문국이 부활하고 있는 중이다. 공원 바로 앞에는 감문국 궁궐에 딸린 연못이라고 전해지는 동부연당이 자리하고 있다.

감천의 비옥한 평야를 발판삼아 지역을 호령하던 고대 변한의 강소국인 감문국의 유적과 전설을 만날 수 있고, 어린이 물놀이 시설도 갖춰져 있어 가족이 함께 나들이하기에 좋다.

봄이 오고 있는  감천(甘泉) /김천의 젖줄로 시내를 가로질러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감천과 감문국

인류의 문명과 도시는 강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인류최초의 문명으로 일컬어지는 4대문명인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 중국 황하 강 유역의 황하 문명, 인더스·갠지스강 유역에서 일어난 인더스 문명은 전부 강에서 비롯됐다.

최근 중국이 세계 4대 문명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홍산문화 즉 ‘랴오허문명(遼河文明)’도 우리말로 요하, 중국말로 랴오허(遼河)라는 강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우리나라 고대국가들도 한강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고, 중국 ‘당서’에서 웅진강으로 불리던 금강 유역인 공주와 부여에서 화려한 백제문화가 꽃을 피웠다.

김천의 뿌리인 삼한의 소국 감문국도 예외가 아니다. 김천의 젖줄인 감천이 바로 감문국 태생의 터전이다.

감천(甘川, 甘泉)은 한자의 차용으로 우리말로는 '감내'다.

감’은 신(神)을 이르는 것으로, 단군왕검이란 말처럼 ‘검’의 모음이 바뀌어 ‘감’이 되고, 또 ‘중심’의 의미도 있다. 따라서 감천은 신처럼 귀하고 중앙을 흐르는 내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물맛이 달고 좋아서 그리 불렀다고도 한다.

감문국은 3세기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 한조(韓條)에 나오는 감로국(甘路)과 같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변한12 소국 중 하나로 위치는 감문국(甘文國)이 있던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甘川)유역의 개령면과 감문면 일대로 추정하고 있다.

‘삼국사기’지리지에 따르면 개령은 옛날 감문소국(甘文小國)인데, 신라에 점령된 뒤 감문군에서 개령군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어모현(禦侮縣)은 본래 금물현(今勿縣)이었다. ‘감천’의 ‘천(川)’은 훈독(訓讀)하면 ‘물’이 되기 때문에 ‘감물’이 된다. 이는 곧 ‘감문국’의 ‘감문’, 또는 ‘금물현’의 ‘금물’과도 연결된다.

‘감천’의 ‘천’은 ‘내’로도 읽혀지므로  ‘감천’은 ‘감내’로도 불렸고, ‘감로국’의 ‘로(路)’는 ‘노(奴)’와 같이 ‘내’로도 표기되므로 결국 ‘감로’와 ‘감내’는 같은 표기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감문국은 감로국과 같고, 감로국은 감내국 즉 감천국이란 말이다. 감천의 나라이니 감문국과 감천은 뗄 수 없는 한 몸인 것이다.

감문국 궁궐의 연못으로 전해오는 동부연당

#김천인(金泉人)에게 감문국이란?

감문국은 서기 231년에 삼한의 소국에서 강자로 성장하던 사로(후에 신라)국에 패망했다. 그것이 역사서(삼국사기,삼국사절요)에 기록된 확실한 팩트다.

감문국의 남은 유적은 왕릉급 무덤3개와 산성3개, 빗내농악(무형문화재 제11-7호) 그리고 지명과 전설만이 남아있다. 왕릉급 무덤중 하나인 장부인릉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훼손됐다.

신라에 멸망당한 주위의 삼한 소국인 상주의 사벌국과 의성 조문국의 유적에 비해서 초라하기까지 하다.

어찌보면 이름 없는 부족의 유산보다 외형상으로는 남아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천은 왜 지금 감문국을 이야기해야 할까?"

현재 경북 김천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김천혁신도시다. 정확히 말하면 경북혁신도시가 율곡동에 생겼다. 인구2만을 넘는 새로운 도시가 생겨난 것이다. 서울과 경기에서 공공기관 13개의 본사가 이주했고 외지인들이 신도시 인구의 반을 채웠다.

시골마을에 한국도로공사와 한국전력기술 같은 공공기관 본사가 자리하면서  수십층의 빌딩들이 생겨나고 KTX역도 건설됐다.

그동안 씨족사회로만 살던 김천에 대변혁이 일어난 것이다.  2000여 년전 부족이 옹기종기 살던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에 청동으로 만든 칼과 창을 들고 나타난 외지인을 만난 조상들이  느꼈던 충격과 맞먹는 대변화일수도 있다.

이제 김천은 문화와 사고(思考)적 측면에서 이질적인 사람들여 모여사는 복합문화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김천인의 정체성에 대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김천인들의 마음속에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이 일어날 수 있다.  김천의 뿌리에 대해서 한 번 쯤은 정리해둘 필요가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감문국의 수도인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에 건설중인 '감문국 이야기나라'공원 입구

#감문국 부활(復活)의 시작..감문국 이야기 나라

김천시는 지난 2018년 1월 잊혀진 감문국 역사를 재조명해 역사문화를 보존하고 김천시민의 자긍심과 정체성 고취를 위해 “감문국 이야기나라 조성사업”기공식을 열었다.

김천시는 민선 6기 공약사업으로 총 사업비 159억원을 투입해 개령면 동부리 일원 20120㎡부지에 역사문화전시관을 중심으로 각종 역사테마 체험시설을 조성하고, 감문면 삼성리에 위치한 금효왕릉을 정비하기로 했다.

직지사권역, 부항댐권역, 증산권역과 함께 감문국권역을 개발하여 김천시 전역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체류형 관광도시로서 도약하기 위한 야심찬 계획이다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에 있는 '감문국 이야기나라'전경

설날 다시 찾은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감문국 이야기나라 현장의 체험시설은 한창 마무리 작업중이었다.감문국의 마지막 왕으로 전해지는 금효왕릉과 그의 부인 장부인릉,양천리 장군무덤의 재현,감문과 관련된 전설과 설화에 대한 소개비도 깔끔하게 세워져 있고 아이들의 물놀이장도 개장 준비도 끝나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역사유물관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바로 옆에는 감문국 궁궐의 연못으로 전해지는 동부연당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예전 이 부근은 감문국의 궁궐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동부연당 주변에는 조선 전기 개령현감 김숙자가 아들 김종직과 함께 감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심었다는 버드나무 고목 몇 그루가 운치를 더하며 서있다.

각자 수많은 전설을 간직한 채 봄이 되면 싱그런 잎사귀를 틔울 준비를 하면서,,,

배시내  석쇠불고기 거리

#배시내 연탄 석쇠불고기

동부연당에서 선산 방향으로 다시 5분정도 차를 달리면 연탄에 고기 굽는 냄새가 코끝을 파고 들어 식욕을 돋군다.

바로 배시내 재래식 불고기촌이다. 

연탄에 고추장으로 양념된 돼지고기 직화구이는 전국적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지난해에는 유명요리사가 나오는 TV프로그램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때는 방송을 보고 밀려드는 손님으로 고기가 없어 못 팔 정도였다.

배시내 양념석쇠불고기

배시내는 감천이 바로옆에 흐르고 남서쪽에 외현천이 있어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있고, 교통 여건이 좋아 일찍 상권이 형성됐다.

'배시내'는 낙동강에서 감천으로 이어지는 수로를 따라 소금배와 물품을 실은 배들이 드나들어 ‘배가 드나드는 시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40여 년 전까지 3일,8일에 5일장이 섰고, 우시장은 경상북도 일대에서 큰 황소가 가장 많이 거래되는 소전으로 유명했다.

배시내는 140여 년 전 개령민란이 일어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개령민란은 조선 후기 발생한 농민항쟁으로 1862년(철종 13년)개령현감 김후근과 향리들의 폭정에 항거해 현민들이 배시내 장터에 모여 봉기한 사건이다.

당시 현민 수천 명이 모여  부정 축재자 박경주와  관리 다섯 명을 죽이고 동헌과  장부를 불태웠던 김천 지역 최대 규모의 민란으로 기록되고 있다.

감문국 유적 지도

#감문국의 유적과 전설을 찾아서

감문국은 1800년전에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감천은 유유히 흐르고 땅은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유적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골짜기와 마을마다 전설과 명칭으로 그동안 감문국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김천의 다른 이름인 금릉(金陵)의 효시라 일컬으지는 감문국의 마지막왕의 무덤인 금효(金孝)왕릉,흔적조차 사라진 감문국 왕비의 무덤인 장부인릉,감문군사들의 혼이 담긴 빗내농악,적을 막기 위해 쌓은 감문산성,고소산성,속문산성, 감문국 공주와 사로국 병사의 슬픈 사랑이야기,이웃한 아포국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보낸 30인의 대병(大兵)이 출병한 이야기,감문국의 왕릉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능골 등이 감문국의 실존을 전해주고 있다.

감문국 첫 여행지로 개령면 동부리의 '감문국이야기나라'를 구경하고, 가까운 곳에 있는 '빗내농악체험관'에서 감문국 병사들의 숨결과 몸짓이 담긴 진굿을 체험한 후,  배시내 연탄 석쇠구이로 배를 채운 다음 바로 옆 감천 방천을 거닐며 예전의 풍요로웠던 돛단배가 다니던 감천의 봄물결을 보노라면  감문국은 희미한 과거 역사의 사진첩에서 걸어나와  生生한 한폭의 풍경으로 성큼 다가온다.

앞으로  20회에 걸쳐 2000여년동안 잠들어  있던  김천의 뿌리, 미지(未知)의 고대국가 감문국의 역사와 유적, 전설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동행자가 많기를 기원하면서...

글.사진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자문 >

문재원 (향토사학자,前국사편찬위원회 김천사료조사위원) ,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이갑희(경북 향토사연구회 회장역임,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국악진흥원자문위원)

<참고문헌>

김천시사(김천시)

김천의 발굴유적(김천문화원)

조상의 얼찾아(문재원)

금릉빗내농악 (민속원)

대구.경북 청동기시대 문화(삼한문화재연구원)

김천의 마을과 전설(김천문화원)

디지털김천문화대전  등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저작권자 © 황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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