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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졌으면 어쩔 뻔했어요.

기사승인 2020.01.20  0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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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샘 (프리랜서 기자.워싱턴 D.C거주)    

 이혼율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만도 이혼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우리와 같은 줄에 4가구가 살고 있는데, 그 중에 2가정이 이혼해서 따로 살고 있다.  두 가정 다 우리 아들과 친구이기 때문에 생활을 엿 볼 수가 있는데, 살아가는 것이 여간 고달픈 것이 아니다.  주로 아이들은 여자가 기르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이웃들은 모두 남자가 기른다.  그러다 보니까 어려움이 더 많은 것 같다.  아이들 도시락 챙겨주랴, 숙제 도와주랴, 또 13세가 되지 않은 아이를 집에 혼자 두는 법적으로 아이를 빼앗길 수 있는 사유까지 되는 데도 아빠가 일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쉬쉬해가며 혼자 두고 다닌다던가.  그 외에도 아내 없이 혼자 살아가는 데에 정신적 충격도 적지 않은 듯 둘 다 몹시 지친 듯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혼하면 정신적인 고통으로 인해 수명도 훨씬 단축이 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혼이 주는 상처가 얼마나 큰 가를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그런 어려움을 감내하면서도 이혼은 자꾸만 늘어가는 것이다.

아내의 친구가 남편과 시댁간의 불화로 이혼 직전에까지 이르렀었다.  서류에 도장을 찍는 마지막 절차를 기다리며 공중 전화에서 우리 집으로 전화를 했다.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사이라 가장 힘든 일을 하는 시간에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싶었다.  때마침 아내가 없어서 내가 대신 받게 되었다.

한번 만 참아 보세요.

나는 참으로 간곡하게 부탁을 했다.

그녀는 나의 말을 듣고는 도장을 찍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에 그녀로부터 감사의 전화를 받았다.

감사해요.  우리 아주 잘 살고 있어요.  그 때 헤어졌으면 어쩔 뻔했어요.

그녀의 행복한 음성을 들으며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일곤한다.

우리가 미국에 올 때까지도 그 부부는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이혼의 사유도 다양하다.  폭행에서부터 부정, 성격 차이 등등.  나는 그 많은 이혼율을 낳는 이유들이 모두 절대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번쯤 돌아서 생각해 보면 이혼에  까지 이르지 않았어도 되는 이유는 수없이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이혼의 절대적인 사유가 되는 경우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성경에는 부정만을 이혼 사유로 허락하고 있다.  요즘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면 몇 가지는 더 언급하지 않으셨을까 싶다.  도박이나 마약 같은. 

우리와 친분이 있는 어느 분은 도박 때문에 이혼을 했다.  남편이 도박 때문에 가출을 했다.  몇 년만에 돌아온 그는 이제 도박에서 완전히 손을 뗐으니까 앞으로 행복하게 살자고 했다.  너무 기쁜 나머지 그분은 아는 사람들을 불러 조그만 파티까지 마련했다.  그러나 며칠 후, 조그만 장사라도 차려서 일을 해야겠다는 남편의 말에 아무 의심 없이 노상으로 어렵게 마련한 3만 달러를 내주었다.  그 남편은 받은 즉시 그 돈을 가지고 다시 가출을 해 도박을 했다.  아내는 더 이상의 미련이 없어서 이혼을 해 버렸다.  그런 이혼은 말리고 싶지가 않다.  이미 20여년의 손상된 그녀의 삶마저도 너무 늦은 감을 느끼게 만든다.  도박은 부정 못지않게 배우자에게 큰 부담을 준다.  마약도 그와 마찬가지다.  그런 절대적인 이유는 아무도 이혼을 말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격차이라던가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 생기는 불협화음 같은 것은 극복해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성이 강하고 인내가 부족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날로 다양해져 가는 오늘의 사회에서 결혼이라는 틀을 유지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쉬운 것만은 아니다.  사회가 복잡해져 가는 만큼 이혼도 정비례해 늘어간다는 수학적 현실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지탱하기 어려운 만큼, 그것을 공들여 함께 가꾸어 보는 것도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괴테의 말로 기억된다.  왕이던 평민이던 가정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힘든 일인만큼 함께 극복하면 그만큼 가치도 크리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결혼은 두개의 거친 돌을 한 주머니에 넣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평생을 서로 부딛쳐 함께 반들반들한 조약돌을 만들어야 하는.  그런데 현대인들은 조약돌 만드는 노력에는 미숙하기 그지없는 것 같다.  거칠거칠한 것이 잃으면 주머니를 박차고 나가는 해결책만을 우선 생각하게 된다. 

헤어져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보다는 불행해 지는 경우를 더 많이 보게 된다.  본인들뿐만이 아니라 자녀들에게 주는 충격은 몇 배나 더 클 수가 있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또 하나 이혼이 주는 좋지 않은 것은 대부분 이혼 시기가 서로를 가장 나쁘게 생각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평생을 가슴에 나쁜 사람 하나를 품고 살아가야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그 당시를 지나고 나면 좋은 모습이 얼마든지 많을 텐데, 그런 모습은 전혀 읽혀지지 않고 치를 떠는 사람으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모습으로 헤어지기 때문에 평생의 원한이 가슴에 맺혀 두고두고 삭일 수 없는 한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미국 사람들과는 달리 한국 사람들은 한번 이혼하면 대부분 다시 만나지 않는다.  미국 사람들은 좋지 않게 헤어졌어도 다시 만나 친구처럼 지내는 일이 흔하다.  결코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그게 미국인들의 문화다.  그렇게 다시 만나다가 전남편의 아이와 현재 남편의 아이를 동시에 임신해 화재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미국인들은 만나면서 미움을 삭일 수 있지만, 한인들은 그렇게 되질 못한다.  또한 대부분 아이들도 한쪽을 선택해서 선택되지 못한 쪽은 다시 만나질 못하니까 아이들에게도 더할 수 없는 충격이 되는 것이다.  과연 그러면서까지 이혼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경우인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일이다. 

미국에 살면 이혼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특히 아내가 가정을 지키는 한국식 생활 방식에서 어쩔 수 없이 아내도 밖으로 나와 생활해야 하는 커다란 환경의 변화는 걸핏하면 이혼이라는 반갑지 않은 결과를 안겨 주곤하는 것이다.  미국에서의 한인의 이혼은 한국에서와는 달리 상처를 다독여 줄 친구나 가족들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혼은 감정적 마지막 결정이 아니라 이성적 마지막 결정이 되어야 한다.  한번의 결정이 남은 전 생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 만큼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김천황악신문 #강샘

김천황악신문 webmaster@hwang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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