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세상에서 가장 슬픈 부처, 시멘트에 묻혀 땟국물 가득한 옥율리 아미타여래입상 [김천의 문화재 19]

기사승인 2023.11.20  20:51:33

공유
default_news_ad2
문암사 가는 길가 보리밭

이승에서 만나야 할 대상은 언젠가 만나게 된다. 청보리가 들판을 가득채운 봄날 그를 만났다.

길가에는 복숭아가 몸통을 키워가고  들짐승들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 가던 어느날 오후 마음먹고 어모면 옥률리 아미타여래를 다시 찾아 나섰다.

두 달 전 쯤 차를 몰고 가다 직진이 불가능해 후진한다고 고생한 기억 탓에 동네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찾기로 했다.

시골 동네지만 길이 꽤 복잡하다. 차량 교행이 안 되는 곳도 있다. 네비를 보니 1.2km 차로 3분 거리다. “이쯤이야” 하고 걷기 시작했다. 동네를 벗어나 조금 올라가니 문암사 라는 표시가 있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보리밭을 지나고 복숭아 밭을 지나도 절은 보이지 않는다. 먹이를 찾는 삵도 만났다.

어느새 멀기만 하던 산이 가까이 다가오니 저 멀리 등이 하나 보인다. 절이 가깝다는 말이다.

문암사 경내에 있는 탑

길을 조금 올라가니 탑이 보인다. 절집은 퇴락하고 인기척 하나 없다. 물 한 모금 마실 수도 없다.

햇볕조차 제대로 들어올 것 같지 않은 습한 기운은 넘치는데 사람을 자주 보지 못한 개들이 시끄럽게 짖는다. 호기심 많은 강아지는 주위를 맴돈다.

위로 조금 올라가니 우람한 바위 가운데 개인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이 무덤의 주인은 바위의 기운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랬다면 후손들은 출세했을 것이다.

옥율리 문암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무덤 아래 부처를 모셨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작은 건물이 하나 있다. 어두컴컴한 문을 열어 젖히고 보니 하반신은 시멘트에 묻혀 있고 땟국물 가득한 형체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부처가 말없이 맞는다.

왼손은 누가 빼어가서 사라지고 살아 있는 인간이 숨 쉬기 힘든 공간 속 조악한 부처의 모습에 눈물이 난다.

이렇게 모실 부처라면 차라리 넓은 들판에 신선한 공기와 꾀꼬리 노래 들으며 서서히 無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나을 듯 싶다.

生者必滅이요 諸行無常인데 부처인들 그 법에서 자유로울까? 더구나 돌 조각이 말이다.

좁은 극락전에 앉아 잠시 명상도 힘들다. 이곳이 어찌 부처의 공간이라 이름할 수 있을까? 이런 모습이라면 차라리 滅하는 것이 부처에 대한 인간의 도리일 것이다.

화강암으로 조각한 불상은 마을 뒤에 방치되어 심하게 파손된 채로 발견됐다. 1981년 구화사 승려 도현(道玄)이 극락전을 지어 모셨다. 1995년 6월 30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11호로 지정됐다.

아미타여래입상은 좌대는 없고 불상과 광배가 한 돌에 조성됐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렸고 왼손은 다른 돌로 끼우게 되어 있으나 사라지고 없다.

손을 별도로 제작해 끼우는 방식은 나무나 쇠로 만든 불상에서는 흔하지만 돌로 만든 불상에는 희귀하다.

비슷한 방식의 통일신라시대 석조 불상은 예천군 흔효리에 여래입상이 있다.

다리 아래 부분은 시멘트에 묻혀 형태를 알 수 없다. 기울어지고 마모가 심해 자세한 표현 양식은 확인이 힘들다.

불상의 높이는 147㎝, 광배의 높이는 160㎝이다.

건물 내부의 습기로 불상은 손상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언제까지 불상은 시멘트에 두 발이 묻힌 이 모습대로 있어야 할까...

명색이 경북의 유형문화재인데 너무나 초라한 아미타불의 모습에 시린 가슴을 부여안고 돌아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터벅이며 내려오는 뒤통수가 무겁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보살필 성의가 절집 사람들과 우리에겐 없는 것일까? 아니면 절집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인가!

기름진 음식 몇 끼 줄이고 아낀 돈이라도 보태  48대 큰 서원을 세워 중생을 구제하고자 발원한 아미타의 영혼을 저 시멘트 바닥과 좁디좁은 공간에서 解放시키고 싶은 간절함이 솟구친다.

문암사 가는 길

문암사의 유래도 모른다. 석조아미타불의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 후기로 추정된다.

1000년의 세월동안 수많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소원을 들어주었을 부처는 지금까지 만난 불상 중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긴 부처에게 기쁨과 슬픔이  어디 있으랴! 

단지 내 마음이 그런 상태라고 믿고 싶다.

생각하면 눈물 나는 부처를 세상 사람들이 잊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도 나의 부질없는 욕심이리라.

“나무아미타불”

 

#김천의 문화재 #옥율리 석조아미타불입상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저작권자 © 황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