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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리 삼거마을 느티나무,“황악산 깊은 골 은거한 500살 당산나무”

기사승인 2023.10.24  15:5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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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의 노거수 13

바람재 가는 길에 물드는 단풍

#바람재 가는길

김천의 유명 사찰인 직지사 입구에서 두 갈래 길이 갈린다. 좌측 산길을 따라 오르면 바람재 가는 구불구불 산길이 나타난다. 바람이 부는 지역이라 감나무의 잎사귀는 다 떨어져 앙상하고 빨간 감이 마치 겨울 같다. 산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바람재는 바람이 심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천시 대항면 주례리와 충북 영동군 상촌면 궁촌리를 연결하는 고개다.

바람재 북쪽에는 1111m의 황악산,남쪽으로는 높이 약 1030m에 이르는 높은 봉우리들이 이어진다. 바람재의 다른 이름은 풍령(風嶺)이다. 바람재 동쪽 비탈은 경사가 완만해 목장이 있다.

 바람재 동쪽 기슭에서 발원한 하원천(下院川)은 감천(甘川)으로 흘르들고 서쪽 비탈에서 흐른 궁촌천(弓村川)은 영동군 초강(草江)으로 흐른다.

바람재 고갯마루에 큰 성황당이 있어 성황당고개로도 불리었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주례리 삼거마을 가는 길

#주례리

바람재에 오르면 우측으로 새로운 길이 나 있다. 오른쪽으로는 화실과 삼성암으로 가는 길이고, 직선으로 고개를 오르면 삼거마을이 나온다. 예전에는 삼거를 접근하기가 힘들었지만 현재는 포장도로가 잘 닦여 있다.

산길로 올라가는 아스팔트 길이  흰구름과 산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닮았다. 마치 천상으로 가는 길처럼 보인다.

삼거는 대항면에서 가장 산간 오지 마을이다. 구성면 마산리, 충북 영동군 상촌면, 대항면 등 세 갈래 길이 나뉘는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포장된 넓은 길이 생겨 불편함이 없다. 병자호란때 산너머 영동군 상촌면에서 사람들이 옮겨 와 만든 마을이다.

1916년년 화실,주공,삼거 세 마을을 합쳐 주례동으로 고쳤다.

주례라는 이름은 1790년대 곡부 공씨(曲阜孔氏) 일가가 마을을 개척하면서 공자가 활동한 주나라의 ‘주(周)’자와 예법에 따라 살겠다는 의지를 담아 ‘예도 예(禮)’자를 써서 주례(周禮)라 했다.

화실마을은 300년 전 약초를 캐던 은진 송씨가 근처에 꽃이 예쁘고 열매를 맺은 과실나무가 많아 정착하해 살면서 붙인 이름인데 화곡(華谷)이라고도 한다.

화실 마을 안쪽으로 10리쯤 산길을 오르면  직지사의 말사 삼성암이 나온다. 약사보전의 석조여래좌상은 증산 수도암 약광전 약사여래,금오산 약사암 약사여래와 함게 삼형제를 맺었다는 전설이 있다.

공자동 1000살 느티나무

#공자동 전투

바람재에서 구성 방향으로 10여분 정도 내리막길을 달리면 공자동이 나온다. 말 그대로 공자를 흠모한 선비가 만든 마을이다. 1670년 경주이씨,김해김씨,밀양박씨 등 세 선비가 가족과 함께 정착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구로다 나가사마(黑田長政) 이끄는 왜군은 성주와 개령을 거쳐 4월 25일 김천역에 도착했다. 김천역을 지키던 우방어사 조경(趙儆)과 조방장 양사준이 싸웠으나 패배하고 조경은 구성 상좌원으로 후퇴했다. 경상도를 담당한 데루모토(毛利輝元) 5월 10일 현풍, 18일에 성주에 침범했다. 6월 12일 개령에 사령부를 설치하고 거점을 삼았다. 개령을 둘러싸고 왜군과 의병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고령 출신 김면(金沔)의 의병이 왜군을 공격하자 개령·김산에서도 의병이 일어나 왜적을 무찔렀다. 김천에서도 여러 전투가 벌어졌다. 공자동 전투도 김천역 전투, 추풍령 전투, 우두령 전투, 지례 전투, 석현 전투와 함께 왜군과 싸움이 벌어진 현장이다.

왜군의 소속부대가 공자동에도 포진중이었다. 1592년 7월에 봉계출신 좌수 정유한이 봉계에서 의병 150명,대항면에서 100명을 모아 김산군수 이우번에게 인계했다. 5월25일 왜군이 김산에 도착하자 군수는 의병군을 이끌고 삼성암에 진을 쳤다.

9월 초순 진주목사 김시민이 군병 2천명을 거느리고 김산에 와서 군수 이우번과 함께 왜군을 섬멸하고자 했다. 군수 이우번의 군병이 적을 입석 판교로 유인하고 김시민 의병군이 공격해 세차례 싸운 끝에 공자동을 탄환했다,

삼거마을 느티나무

# 주례리 삼거마을 느티나무

주례리 삼거마을 길가에는 수령 약 500살 보호수가 있다. 높이 13m, 가슴높이 둘레 6.53m이다.

주례리 느티나무는 김천시에서 1982년 10월 29일 보호수로 지정했다. 약 40년 전까지 동제를 지냈다. 음력 1월 3일 해가 질 때 마을 입구 ‘상당(上堂)’에서 먼저 제를 먼저 지내고, 마을 아래 ‘하당(下堂)’인 주례리 느티나무에서 다시 제를 지냈다.

삼거마을 호두밭 길

삼거마을 입구에는 가파른 호두밭으로 오르는 길이 마치 영화속 풍경같다. 마을 입구에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원한 물이 발길을 잡는다.

개울 위 다리에 ‘고향같은 부모님 찾는 길’내고향 삼거리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그 앞에 느티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다. 500년의 긴 시간에 몸통은 썩어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건강하다.

충전재가 갈라져 빗물이 들어가 썩어가지만 당분간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원래 나무의 심재는 썩어도 외피에서 영양과 물을 흡수하기에 바람만 조심하면 살아 갈 수 있다.

반대편에서 보면 미끈한 두 가지를 하늘높이 뽑아올렸다. 옆에는 노인들이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몸통에 금강역사처럼 울퉁불퉁한 옹이는 당산나무의 살아온 내력을 증명한다.

삼거리 느티나무

#황악산 구곡

황악산을 배경으로 쓴 조선 후기 가사문학이 전해온다. ‘황남구곡’이라고도 한다. 이관빈(李寬彬.1759~?)은 장편 가사(歌辭) 「황남별곡(黃南別曲)을 지었다.

윤희배(尹喜培.1827~1900)는 황산별곡(黃山別曲)을 썼다. ‘황남별곡’은 18세기 말 김천 황악산 구곡의 풍경을 노래한 기행가사다. 구곡은 제1곡 백장층암, 제2곡 문도동, 제3곡 저닉촌, 제4곡 귀영곡, 제5곡 백어리, 제6곡 안연대, 제7곡 자하령, 제8곡 공자동, 제9곡 주공동이다.

‘황산별곡’’은 19세기 후반 홍선대원군 시절에 었는데 80% 이상이 ‘황남별곡’과 비슷하다. ‘황산별곡’의 151구 중 127구가 ‘황남별곡’과 거의 일치하거나 닮았다.

도학을 노론의 관점에서 서술한 ‘황남별곡’을 남인의 관점에서 고친 양반가사다. 두 가사 작품은 김천지역이 우리나라 성리학 최초의 확산지역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황악산에서 발원해 감천으로 흘러드는 하원천 (구성천)의 절경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주례기 삼거 느티나무

#김천의 나무 #주례리 느티나무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저작권자 © 황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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